2024년 본당사목지침
“너희는 조심하고 깨어 지켜라. 그때가 언제 올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마르 13,33)
전례력으로 ‘나해’인 올해 첫 번째 주일, 대림 1주일 복음 말씀의 핵심어는 ‘잠’입니다.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것들 대부분이 그러하듯, 잠은 너무 과도해도 문제이고 너무 부족해도 문제입니다. 잠은 삶이 양가적 성격을 띤다는 사실을 강하게 드러냅니다.
성경에서도 잠은 결정적인 장면들에 등장하며 인간 실존의 양면성을 계시합니다. 아담의 잠(창세 2,21)을 필두로 아브라함의 잠(15,12), 야곱의 잠(28,12)을 거쳐 사울(1사무 26,7)과 엘리야의 잠(1열왕 19,5)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신약성경도 요셉의 잠(마태 1,20; 2,13.19.22)으로 시작해서 여러 유형의 잠을 소개합니다. 회당장 야이로의 딸(마르 5,39)과 라자로의 죽음(요한 11,11)은 주님 친히 당신 스스로를 계시하시는 장으로서 특별한 의미의 잠이었습니다. 더 나아가 주님의 핵심 세 제자(베드로 그리고 야고보와 요한)의 잠이 중요합니다. 그들은 타볼산(루카 9,32)에서나 겟세마니(마르 14,37)에서 잠들지 말아야 했습니다. 주님의 참된 신원과 운명이 가장 분명히 드러나는 자리였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든 잠도 있고 하느님께서 쏟으신 잠도 있습니다. 차라리 깨지 않는 것이 좋았을 잠도 있고 하느님께서 깨우시는 잠도 있습니다. 스스로 든 잠의 경우 어쨌든 깨어나야만 합니다. 잠이 일종의 도피처이기 때문입니다. 실망이나 절망 또는 두려움이 너무 크면, 잠만이 유일한 도피처입니다. 스스로 청하는 ‘작은 죽음’입니다. 그래서 심층 심리학적으로 잠은 흔히 무기력으로 번역되는 lethargy(라틴어로 lethargia)와 연관됩니다. lethargy의 어근은 이승과 저승 사이에 있는 망각의 강인 lethe입니다. 잠은 극복 못할 현실 앞에 무기력의 결과이고 망각에로 이끕니다. 잊어서는 안 될 것(모두가 죽으며 믿음으로 다시 살 것이라는 사실)을 잊기 위해 자는 것입니다. 그렇게 진리에 역행합니다. 그리스어로 진리는 lethe에 부정 접두어 a가 결합된 aletheia이기 때문입니다. 진리는 (잊지말아야 할 것을) 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기억(기념)하다’는 의미를 지닌 라틴어 동사 memento가 2격(소유격) 지배 동사인 것도 의미론적으로 부합됩니다. 누군가를, 무엇을 진정으로 기억하는 것은 단순히 생각 속에 떠올리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속함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죽은 이를 기억하는 것은, 그가 여전히 나에게 그리고 내가 그에게 속해있다는 사실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기억하다’는 의미의 remember 역시 동일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기억은 re, 다시금 ‘member로 만들기’와 다름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잠들지 않고 깨어있어야 하는 이유는, 우리에게 속해있는 자들이 망각의 늪에 빠지지 않고 다시금 우리에게 속한 자들로 되돌려지기 위해서입니다.
- 모든 민족이 주님께 속해있기에, 우리에게도 속해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기 위해 깨어있어야 합니다(선교의 이유).
- 가족중 냉담 중인 자가 여전히 우리와 함께 주님께 속해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기 위해 깨어있어야 합니다(냉담자 권면 이유).
- 주님 품에 있는 자들이 여전히 우리에게도 속해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기 위해 깨어있어야 합니다(연령회에 대한 관심).
- 몸과 마음이 아파 스스로 고립될 위험에 처한 자가 주님 안에 우리에게 속해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기 위해 깨어있어야 합니다(병자들과 소외된 이들에 대한 관심).
거창 본당 교형자매 여러분, 내 주변에 망각의 늪에 빠져드는 자들이 있지 않게 ‘잠들지 않고 깨어있을 수 있는’ 은총을 청하는 한 해 되길 빕니다.
2024년 대림 1주일
거창본당 주임 이진수(스테파노)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