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히 성전 문을 열었을 때 빼곡하게 앉은 신자들의 모습이 놀랍다. 평일 낮미사인데, 수가 많고 무척이나 조용하다. 미사 시작 전의 성전 분위기가 숙연하다. 대형십자가가 측면 벽에 있는 독특한 구조의 성전에는 스테인드글라스에서 비치는 곳곳의 신묘한 빛깔이 전례를 경건하게 한다. 주례 사제의 진중한 표정은 좌중의 흐트러짐을 가다듬게 만든다.
경건하게 전례에 맛들이기
이진수 스테파노 주임 신부, 김태섭 마태오 사목회장, 최민희 아녜스 부회장과 본당 이야기를 나누었다. 방금 레지오 단원 한 명의 선서식을 하고 온 이진수 신부는 미사 때와는 달리 엄숙함을 걷어내고 환한 표정을 지었다. 요즘 레지오 단원 한 사람 찾는 게 얼마나 귀한 일이냐고 좋아한다. 본당 신자들이 말씀 안에서 업그레이드되기를 소망하며, 경건하게 전례에 맛들이기를 목표로 하여 성전에서의 자세나 마음가짐이 매우 중요함을 당부한다.
김태섭 회장은 얼마 전에 책임을 맡았다. 직장일로 25년 전 이곳으로 전입해서는 발만 담그고 바라보기만 하려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성가대, 꾸르실료, ME에다 사목회에서 기획과 전례분과에서 일하다 드디어 회장이 되었다. 82년 역사의 한 부분밖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그 역사를 쌓아온 선배들의 공로를 잘 지켜보려고 한다. 신자들의 작은 목소리도 크게 듣고 공동체의 조화를 이루어 보려고 한다. 최민희 부회장은 30여 년 전 고향을 떠나와, 아기를 업고 스스로 거창성당을 찾아와 세례를 받았다. 주위 선배들의 보살핌이 자신의 열정을 키우게 했단다. ME 활동하며 부부가 함께 본당 일꾼이 되었다. 남편은 이미 사목회장을 역임했고, 자신은 구역분과와 제대회 등을 거쳐 부회장에 이르렀다. 막중한 임무이지만, 중간세대로서 막중한 선배형님들의 도움을 얻고 아우들의 뜻을 살피며 세세한 역할을 하려고 한다.
사목위원
옥토버 페스티벌
최근에 성당 뜰에 파고라를 설치하고, 그 주위에서 모처럼 신자들의 결속을 다지는 잔치를 벌였다. 일명 ‘옥토버 페스티벌’이라는 이름으로 낭만의 시간을 가졌다. 빨랑카를 받아 무료로 제공한 생맥주와 치킨이 가을 분위기를 돋우는 틈새에, ‘아나바다’장을 펼치고 행사의 의미를 더했다. 사제와 새로 맡은 사목위원들은 이 첫 미션에 온 신자들이 마음을 열어 하나 되기를 소망했다. 많은 신자들이 신바람을 내며 마음을 나누고 주머니를 열었다. ‘아나바다’ 수익금은 전액 교구청 건립기금으로 보내는 뿌듯함이 신자들의 가슴속에 다시 나눠졌다.
알고 보면, 거창성당 신자들의 저력은 알아줘야 한다고 누군가 말한다. 지난해에 김대건 신부 탄생 200주년을 맞아 9월에 라오브라 성극단을 창단했다. 그리고 12월 13일 <아,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을 거창문화원 무대에 두 차례 올렸다. 이종일 마태오가 연출하였고, 본당 신자들이 배우로 출연하여 열연하거나 스텝으로 참여하여 땀을 흘렸다. 지금도 성당 구석에 걸린 포스트를 보면 그날의 감동이 되살아난다고 한다. 그들은 이 연극으로 김대건 신부님의 생애와 영성을 남보다 더 알고 새기며 뜻깊은 해를 보냈다. 본당소식지 <한들>이나 본당 홈페이지도 매우 눈에 띈다. 사제의 간섭이나 지시가 아니라도 찾아서 소식을 올리고 활용하는 각자의 역할이 확연히 보인다. 이 매체들을 통해서 교구와 연대하는 노력도 볼 수 있다.
본당나이 82에 걸맞은 신앙나이로
거창성당은 1940년 6월 29일 ‘성모성심’을 본당주보로 하여 설립되었다. 60년이 지날 즈음에는 성전신축에 온 공동체가 일심동체가 되었다. 착공으로 시작하여 완공하고 봉헌하기까지, 스테인드글라스로 성전을 완성하기에 이르기까지 본당 신부가 몇 번 바뀌는 긴 과정을 겪으며 오로지 거룩한 주님의 집을 원했다. 그때 그 피땀 눈물이 거름되어 ‘거창’이란 이름처럼 성장했다. 70년이 되었을 때는 『은총의 70돌』을 발간했다. 『거창성당50년사』에 이은 본당사 제2권이다. 이미 발간된 50년 역사가 있으니 그 후 20년의 역사에 집중하여 엮었다. 그와 더불어 “깨어나 기도하여라”는 표어를 앞세워 은총에 감사하는 기념사업을 추진했다.
이렇게 흘러 올해 82년이 되었다. 이진수 주임 신부는 본당 나이만큼 신앙나이는 따라가지 못한다고 조심스레 말한다. 거창은 대도시 대구와 인접하여 시골이지만 잠재력이 큰 곳이다. 물론 노령층이 많은 건 어디나 마찬가지겠지만, 젊은 사람들의 유입이 만만치 않아 활기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그래서 그런 점을 놓치지 않으려고 한다. 비록 신자들의 이동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해도 신앙의 뿌리를 내리는 것이 중요하다. 외양이 아니라 신앙의 깊이를 가늠하고 도달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진수 스테파노 신부의 안내를 받으며 성심대학이 열리고 있는 지하로 내려갔다. 성심대학은 시니어 교육과정이다. 4,50명의 시니어들이 노래강의에 집중하고 있다. 노래는 다가올 성탄축제 때 부를 곡목이란다. 노래강사는 사목위원 총무인 고승환 하비에르이다. 성심대학이 끝나고 말랑말랑한 떡국 한 그릇씩 받아들었다. 찬 공기를 거두게 하는 뜨끈한 국물이 모두들 얼굴에 미소를 짓게 한다. 성모회 회장과 회원들이 주방을 들락거리며 시중들기에 여념이 없다. 성심대학은 코로나로 중단되었다가 9월부터 다시 문을 열었다. 주도해서 지원하는 분이 있으면 외부 식당에서 점심을 나누기도 하고, 신심단체에서 돌아가면서 자연스럽게 점심식사를 만들어 나누기도 한다. 전례와 말씀에 맛들이면서, 육신의 양식에도 맛들이는 공동체의 시간이다.
성심대학
본 자료는 마산교구 홈페이지 가톨릭마산 본당순례(2022. 12. 8)에 게재되었던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