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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체를 모시는 곳, 감실
 
 
우리가 성당에 들어가면,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성당 중앙이나 제대 옆 벽에 켜 있는 빨간 불일 것입니다. 그 옆에 있는 황금색 감실은 신자들로 하여금, "아, 저기에 바로 하느님이 계시는구나"하는 마음과 존경심을 불러 일으켜 경외심을 갖게 만듭니다. 감실 앞에 무릎 꿇고 기도하는 사람들을 보노라면, 자신도 모르게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할 것입니다.
 
빨간 불과 아름답게 장식된 감실, 그래서 성당에 처음 온 사람이나 오래 전부터 가톨릭 신앙을 지켜 온 이나 할 것 없이 감실이 성당의 중심인 양 생각하게 됩니다. 더더구나 주님의 몸인 성체가 그 안에 있으니, 그러한 생각은 너무나 당연한 듯이 보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이 같은 생각이 과연 옳은가요?
 
4세기 초까지의 박해시기에 교회는 성찬례를 가정집에서 드리곤 하였습니다. 이 때 사제는 그 자리에 모인 사람의 수보다 조금 더 많이 빵을 축성하였는데, 이는 신앙 때문에 감옥에 갇혀 있거나 병으로 인하여 성찬례에 참석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나중에 축성된 빵을 전해 주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러한 목적을 위해 사제는 자기 집 특별한 곳에 축성된 빵을 모셔 두었습니다. 이것이 현재 우리의 감실의 기원이라 하겠습니다.
 
사제가 자기 집에다 성체를 보관하는 것 외에도, 일반 신자들도 성찬례(미사) 때 축성된 빵을 집에 가져가 자기 집에 있는 감실에 모셨는데, 이는 매 식사 전 성체를 먹기 위한 것으로서, 이러한 관습은 로마, 스페인, 소아시아 교회 일부, 에집트에서 6세기 경에 행해졌습니다.
 
종교 자유(313년) 이후 성당들이 세워지게 되었는데, 이 때 제대가 성당의 중심을 차지하였고, 감실은 여전히 신자들의 관심을 끄는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8세기 무렵의 로마예식서에는 교황님이 미사를 드리는 모습이 그려져 있는데, 이에 의하면 제의방에 성체를 모셔 두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중세에 접어들면서 신자들이 라틴어를 이해하지 못했던 이유로 미사에 제대로 참여치 못했고, 또 영적 순결주의에 빠져 성체를 영하기를 두려워하는 반면 성체를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하게 되는 이상한 관습이 생겨났습니다. 성체를 영하는 대신 성체를 바라보는 것으로 미사 참여의 뜻을 찾으려 한 셈이죠.
 
그밖에도 미사 때 축성된 빵이야말로 참으로 그리스도의 몸이란 생각에 성체께 대한 신심이 신자들 사이에 널리 퍼지면서, 성체를 신자들이 잘 보이는 곳에 전시하게 되었으니, 이로써 감실을 제대 위 또는 제대에서 가까운 곳에 놓아두게 된 것입니다. 주님이 계시는 곳이란 것을 알리기 위해 불을 밝혀 두기까지 하였으니, 자연히 신자들의 관심은 제대에서 감실로 옮겨질 수 밖에요. 이에 따라 자연히 감실이 성당 안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인 양 여겨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믿음의 근원은 십자가 제사요, 이 십자가 제사를 재현하는 성찬례(미사)가 아닙니까? 그렇다면 이 성찬례가 행해지는 제대가 우리 믿음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닌지요?
 
현재 교회는 감실을 위한 경당을 따로 지어 신자들이 조배할 수 있도록 배려함과 동시에, 신자들의 관심이 다시 제대, 즉 현재 행해지는 성찬례에 돌려질 수 있도록 배려할 것을 명하고 있습니다. 만일 성당의 공간이 충분치 못하다면 성당 안에 감실을 모시되, 제대 중심의 성당 구조를 해치지 않는 위치를 찾아야 할 것입니다.
 
감실의 목적이 원래 병자와 미사 밖에서의 영성체를 위해 성체를 모셔 두는 것임을 생각합시다. 또 성찬례(미사)가 바로 우리 신앙의 중심이므로 성체께 대한 경의는 바로 이 성찬례, 즉 십자가 제사와 연결되어야 할 것임을 명심하여, 감실과 제대의 관계를 올바로 이해합시다.
 
우리 중에는 혹시라도 미사를 소홀히 하면서도 성체조배는 열심히 하는, 균형 잃은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이는 없는지요?